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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학교 만들기, 그리고 은퇴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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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한 학교 만들기
1997년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 간디학교를 설립한 이후, 한국에서 14년, 필리핀에서 10년 간 교육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2019년 말 교육에서 은퇴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왜 은퇴 하냐고요?
전 원래 교사 타입이 아닙니다. 교사로서의 삶이 제게 썩 맞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전 늘 새로운 아이디어에 흥분하고 그것을 실험해보려는 열의에 차 있는 편이라, 교육활동에 잘 맞지 않습니다. 교육은 지속적이고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아이들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전 늘 새로운 일에 몰두하고 실험하느라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기 어려우니까요. 학교설립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적용해보고자 하는 열의에서 시작한 것이었고, 물론 제가 교장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냥 설립자이자 교육프로그래머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했던 겁니다. 그런데 간디학교 설립 당시 교장을 맡기로 한 분이, 최종적으로 아내 분의 동의를 받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게 생겨서, 제가 울며 겨자 먹기로 교장을 임시적으로 맡게 된 것인데, 결국 24년 간 씩이나 교장을 하게 되었으니, 제 인생은 참으로 억울한 인생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간디학교를 왜 설립했냐고요? 전 고등학교 시절 학교 다니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고1 때 자퇴를 원했지만 아버님의 허락을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다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점심시간에 학교에 가서 일찍 돌아오곤 했고, 학교에서는 맨 뒷자리에 앉아서 철학, 심리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소위 “문제아”였던 것이죠. 학교가 워낙 따분하고 재미가 없고 학생들의 이야기에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전 친구들과 일종의 비밀클럽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 클럽의 이름이 ‘헛솔리즘’이었습니다. 그게 뭐냐고요? 뭐 그리 어려운 건 아닙니다. “헛소리”라는 단어에 “이즘(ism)"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하나 붙인 것이지요.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헛소리주의란 말이 되지요. 학교와 교사들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모두 헛소리로 취급해서 우리들의 이야기가 헛소리가 되고 만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헛소리, 즉 의미 있는 헛소리를 해보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매일 점심시간에 자연스럽게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고 3 때였는데, 헛솔리즘 토론에서 제가 이런 학교가 아닌 행복한 학교를 언젠가 만들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교사들이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학교, 학생들을 인간으로 대접하는 학교, 학교가 너무 재미있어서 아이들이 학교에 결코 결석하고 싶어 하지 않는 학교, 공휴일이나 방학 때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서 병이 나는 그런 학교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한 거죠. 이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고 20년 세월이 지나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는 건데, 좀 동화 같은 이야기 같이 들리겠지만, 학교설립 이후의 제 인생은 정말 고통과 역경의 세월이었으니, 동화같이 시작된 고난의 세월이었다고 해야겠죠. 그러니 함부로 꿈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더욱이 자신에게 거창한 약속을 한다든지 이런 주문을 자신에게 건다든지, 쉽게 해서는 안 되는 거죠. 학교설립을 하고 딱 10년 만 하고 학교를 떠나 제 인생에 맞는 새로운 모험을 했더라면 좋았겠다 후회를 해보지만, 2008년에 청암교육상까지 수상하고 나니 책임감이 더해져 떠나기가 더 어려웠던 것이지요. 하하하. 그러니 상도 함부로 받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죠.
작년 말 은퇴를 결정하고 나서 인생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우선 제가 행복한 학교를 설립한다고 떠들어 놓고 제대로 행복한 학교를 만들었는지 자문해 보았습니다.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타입의 사람이 학교교장으로 있었으니, 제대로 학교운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세운 학교에서 제가 적응하지 못해 늘 “부적응교장”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랜 생활 교육을 하면서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 중에서 두 가지만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자연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발견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자연”에 관해서 입니다. 교육에 있어서 자연이 가장 중요한 요소란 것입니다. 학생들은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자연은 우리를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벗어나서 문명을 만들고 자연을 정복했다고 하지만, 인간은 결코 자연에서 벗어나 존립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요즈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의 하나가, 숲을 회복시키는 것인데, 제가 살고 있는 곳에 여러 종류의 자생종 나무들을 심고 키우고 있습니다. 결국 토양을 회복시켜야 나무가 제대로 빨리 자라는데, 열대의 기후 조건을 잘 이용하면 3년이면 자그만 숲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빨라도 15년 정도는 걸리는데, 여기 열대에서는 3년에서 5년이면 숲을 만들 수 있습니다. 2년 째 나무를 심고 가꾸는데 벌써 작은 숲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아이들이 산청 지리산 자락에 와서 몇 개월 생활하고 나면,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즐거워하고,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느끼게 되며 모두가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래서 변치 않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진보하고 세상이 디지털 세상으로 변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자연에 속한 생명체이며 동물이며 그것을 벗어나 존립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만이 인간 삶을 좀 더 충만하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자기발견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관심을 가진 것에 관해서만 배우게 됩니다. 따분한 강의를 들으면서 배울 수 없습니다. 듣기는 하되 배우지는 않습니다. 이미 뇌는 작동하지 않으면서 절전모드를 켜 놓고 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은 그렇게 보내고 있고 그것에 익숙합니다. 학교에 가면 거의 뇌는 수면 상태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식이면 아이들은 배움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 고약한 병에 걸리게 됩니다. 부모가 아이를 성공시키겠다고 관리자형 부모임을 선언하고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공부 스트레스를 주게 되면 아이는 배움에 대한 염증을 갖게 됩니다. 물론 성질이 고약해지는 것은 물론이구요. 기본은 알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요? 그런데 그 기본이란 것이 무엇이죠? 인생의 기초가 되는 것이 언어, 수학입니까? 아니면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집을 짓고 뭐 그런 겁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이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초다, 아니다 저게 인생의 기초다라고 하는데, 모두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지요.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배우고 즐겁게 배운다는 것이 아닐까요? 인생엔 배울 것이 무척 많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모든 것을 배우기에는 너무나 짧은 거죠.
미국유학 시절 디즈니랜드에 우리 아이를 데려 간 적이 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넓고 놀이할 것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죠. 수 백 가지 놀이 중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데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 거죠. 아마 줄을 서서 기다리고 하는 시간을 제하고 나면 하루 종일 놀이를 하더라도 10가지 정도 밖에 못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1번 놀이부터 차례로 해나요? 아니죠. 결국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것부터 시작해서 다음 다음 순서로 가는 것이죠. 심지어 어떤 놀이가 너무 좋으면 그것을 두 번 세 번 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만일 이것이 우리가 처한 인생의 모습이라면, 우리의 인생에 배움의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기초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진정 배우고자 하는 겻을 배우면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자기발견의 교육입니다. 아이들이 진정 관심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배우게 한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에게 진정 자유와 선택이 주어지게 되면, 어떤 아이들은 하루 종일 목공을 하면서, 어떤 아이들은 조립을 하거나 무엇을 만들면서, 어떤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어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만들고, 어떤 아이들은 바느질을 하고 옷을 만들면서 즐거워합니다. 그럴 때 시간을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고 아이들은 정말 무언가를 배웁니다. 신은 우리에게 다른 관심과 욕구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사랑하며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게 하는 것이 자기발견의 교육입니다. 저는 지난 20년 이상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관심과 열의를 찾아 몰두하고 성취하는 것을 늘 보아왔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행복한 교육의 본질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필리핀국제간디학교 활동 모습>
2. 은퇴 이후의 삶
작년 말 교육에서 은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2월 말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니, 제 인생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반복된 실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르면서, 10년 후의 제 인생을 그려보니 더 비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살다보면 아마 10년 후면 친구 하나 없이 혼자서 쓸쓸하게 죽어가겠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젊었을 때 일중독으로 살았고, 인간관계에 관심과 에너지를 별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절친한 친구도 거의 없고 외로움이나 어려움에 닥쳤을 때 이야기할 만한 상대도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생 정말 헛살았구나, 라는 생각에 사무쳐 거의 열흘 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2020년 올해 초부터 피아노를 치면서 제 가슴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을 통해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죠. 4월이 되자 이 곳 필리핀에서는 자가 격리 기간이 선포되었고, 4월 한 달 동안 집 안에만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제 인생에는 큰 축복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만 6살 된 우리 둘째 딸 시은이와 12살 된 필리핀 수양딸 Cris, 이 두 명의 아이와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함께 운동하고,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주로 피아노를 치면서 보냈습니다. 10살 무렵 피아노를 몇 개월 배우다 그만 두었는데, 늘 피아노를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5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지요. 60이 넘어서야 다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겁니다. 과거에는 기타를 가지고 즉흥곡을 치곤했는데, 이번에는 피아노를 가지고 즉흥곡을 치면서 노래도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가슴 깊은 곳에서의 슬픔과 고통이 밀려오면서 피아노에 빠져 들곤 했습니다. 음악이 격리기간을 통해서 제 인생의 일부가 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것은 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지난 약 6개월 정도는 피아노 기본을 연습한 것 외에 즉흥곡을 수시로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가슴이 많은 위로를 받았고, 슬픔과 고통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중대한 변화인 것이지요. 우리 인간은 늘 상처 받고 가슴에 통증을 갖는데, 이것이 적절하게 치유되지 않으면 이상한 행동을 한다거나 늘 인생이 공허하거나 답답하거나 슬픔에 젖게 되어 힘찬 인생을 살기가 어렵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가슴을 달래어 줄 수 있는 사랑이나 예술이나 종교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최근 교육으로부터 은퇴한 이후, 앞으로의 10년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10년 후가 되었을 때, 그 10년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내가 지난 10년 간 이렇게 살아왔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것들을 한 번 모아보았습니다. 아직 만들고 있는 중이고 좀 쑥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1. 10년의 전체 목표: 다시 태어나는 것 (인생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다)
(1)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살아가기 (교사는 너무 말이 많은 편이다)
(2) 교육자에서 예술가로 다시 태어나기 (나는 본래 교육자가 아닌 예술가로 태어났다)
(3) 모든 것에서 유머감각을 살리기 (교사는 대체로 너무 진지하다)
(4) 남의 인생에 끼어들지 말기, 구세주가 되려고 하지 말 것 (교육자의 또다른 고약한 버릇이다)
2. 앞으로의 10년 - 10년 후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들 목록
- 2030년에 내 인생에 관해 어떻게 말하고 싶은가? (2020 - 2030)
(1) 나는 지난 10년 간 피아노를 치며 살아왔다
(2) 나는 지난 10년 간 음악을 만들었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3) 나는 지난 10년 간 디자이너로서 건축과 조경 일을 해왔다
(4) 나는 지난 10년 간 나무와 숲에 관해 공부했고, 숲을 만들어왔다.
(5) 나는 지난 10년 간 매년 한 번의 긴 여행, 매달 한 번의 짧은 여행을 해왔다
(6) 나는 지난 10년 간 운동 (싸이클, 수영, 근육강화 등)을 지속적으로 했다
(7) 나는 지난 10년 간 몇 몇의 가까운 친구를 유지하거나 새로 만들었다
(8) 나는 지난 10년 간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9) ....
(10) ....
3. 이야기를 마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작은 자원들을 가지고 인생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좀더 많이, 좀더 많이 가지려는 태도에서 버리고, 우리가 이미 가진 것들에 감사하고 그것들을 잘 활용하여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지혜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10년의 계획에 따른 새로운 습관을 하나 둘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는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악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필리핀 네그로스 두마게티에서는 아침 5시 10분 쯤이면 동쪽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하고 날이 밝아오기 시작합니다. 적도에 가까운 열대인 필리핀에서 아침이 밝아지는 시간이 사시사철 거의 일정합니다. 그 시간이 되면 바다가 있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절을 하는 자세로 기도를 드립니다. 신에게 오늘 하루의 생명을 허락하신 데에 감사를 드립니다. 종종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너무나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주어진 생명과 시간을 가지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할 수 있고, 내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의 새로운 습관은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거죠. 즉흥곡이 아니라 진짜 남에게 들려 줄 음악을 말입니다. 여기 필리핀 간디학교에서 교사를 지낸 적이 있는 59세의 Bonnie라는 여자 분이 현재 암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없는 터라 혼자 자신의 집에 살면서 스스로 진통 주사를 놓고 산소통을 가져다 놓고 수시로 사용하고 그러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주일 전 새벽에 그녀를 위해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고 저는 곡과 가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그녀를 방문하여 내가 당신을 위해 노래를 만들고 있는데, 어떠냐고 물었더니, 영광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허락을 받은 거죠. 지난 1주일 동안 열심히 곡을 만들고 가사를 붙이고 준비하고 있는데,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에 한 번, 세상을 떠난 이후 장례식에서 한 번 들려 줄 생각입니다. 제가 만드는 최초의 음악이 죽어가는 한 사람을 위한 음악이 된다는 뜻입니다. 제가 만들고 있는 노래의 첫 구절 가사를 소개합니다. 곡을 들려주지 못해 아쉽군요.
My friend, my friend, Bonnie
It's time to say good bye
We smile, we smile, we smile
We cry, we cry, we cry
We pray, we pray, we pray,,,,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려면 과거의 문을 완전히 닫아야 한다는 것을 늘 생각합니다. 과거의 습관에 얽매이면 같은 실수를 할 테니까요. 이제 교육에서 은퇴를 하고, 교육자가 아닌 예술가로서 살아가고자 하며, 의무가 아닌 기쁨의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가슴으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