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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사랑하게 됩니다" 최재천 교수와 함께 걷는 공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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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위기와 AI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지며 살아야 할까요? 기후 변화는 이미 일상이 되었고, 기술은 인간의 사고방식마저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 혼란의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님(이화여대 명예교수/포스코청암재단 이사/포스코청암상 교육상 수상자)을 만나 길을 물었습니다.
1. 교수님, 안녕하세요! 독자분들께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참 오래간만이죠? 저는 평생 하버드대부터 이화여대까지 여러 강단에서 학생들을 만나 오다가, 지난 2025년 여름에 정년 퇴임을 했습니다. 요즘은 파주출판도시에 ‘최재천의 자연글방’이라는 작은 공간을 열고 '글방지기'로 살고 있어요. 평생 자연 속의 생물다양성을 연구하고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을 관찰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그 지혜들을 글과 강연으로 더 많은 분과 나누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2. 교수님의 길을 정해준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사회생물학'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사실 전 젊은 시절 전형적인 ‘문학청년'이었어요. (웃음) 그러다 우연히 솔제니친의 수필 「모닥불과 개미」를 읽게 됐는데,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일개미의 이타적인 행동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그 의문을 품고 미국 유학을 갔다가 '사회생물학'(Sociobiology) 수업을 들었는데, 아! 내가 궁금해하던 게 바로 이 학문의 영역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당장 그 분야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E. O. Wilson)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운 좋게 제자가 되었고, 그렇게 꿈에 그리던 사회생물학자의 인생이 시작된 겁니다.

3. 요즘 교수님께서 가장 마음 쓰고 계신 연구나 화두는 무엇인가요?
제 스승인 윌슨 교수님이 생물다양성의 최고 권위자셨으니, 저도 자연스레 그 길을 걸어왔죠. 그런데 요즘은 기후 위기가 너무 심각하잖아요. 젊은 친구들이 '기후 우울증'까지 겪는 걸 보면 마음이 참 아픕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결국 '희망'이에요. 자연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연이 스스로를 어떻게 치유하고 복원하는지 그 과정을 과학적으로 기록하는 일이 정말 중요해졌습니다. 이제 현역에서는 물러났지만, 후학들에게 이 '희망의 기록'을 이어가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있죠.
4. 교수님께서는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생물다양성, 중요하단 건 알지만 일상에서 실천하기는 참 막막합니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죠. '알면 사랑한다'고요.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 한 포기, 하찮아 보이는 벌레 한 마리가 왜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하는지 이해하는 게 시작입니다. 무작정 '자연을 보호하자!'라는 구호만 외치면 금방 지쳐요. 대신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세요. 공부하고 알게 되면 마음이 생기고, 마음이 생기면 시키지 않아도 지키고 싶어집니다. 공부가 곧 보전의 시작인 셈이죠.
5. AI 시대에 '통섭'을 강조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인문학이 AI 시대에 더 중요해진다고도 하셨는데요.
많은 분들이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려면 모두 인공지능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의 시대를 이끌 기술 전문가들은 사실상 소수일 수밖에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술을 응용해 삶에 적용하는 분야에서 일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는 필수 덕목이 되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다시 말해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과 인문학의 영역이죠. 그래서 저는 인공지능 시대야말로 우리가 그동안 그토록 바라던 진정한 의미의 ‘인문학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6.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문제 중 하나로 지나친 경쟁을 지적해 오셨습니다. 그러한 경쟁 구조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경쟁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오로지 상대를 파괴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경협(競協, coopetition)을 이야기합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아니 살아남기 위해 협력하는 것입니다. ‘적자생존’은 ‘최적자생존’이 아닙니다. 환경 조건이 어려워지면 최적자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적응에 실패한 일부가 도태되고 다수는 함께 살아남습니다. 손을 잡은 이들이 손을 잡지 않은 독불장군들을 이기고 살아남는 것이 자연의 실제 모습입니다. 혼자 이기는 건 짧지만, 같이 이기는 건 깁니다. 자연이 이미 증명해 준 진리예요. 서로 도우며 함께 승리하는 길은 이미 분명하게 열려 있습니다.
7. 작년 서울대 축사에서 "인생 참 길더라" 하신 말씀이 화제였습니다. 조급한 청년들에게 한 말씀 더 해주신다면요?
정말 그래요. (웃음) 제가 살아보니 인생, 생각보다 참 깁니다. 한두 번 실패했다고 세상 무너진 것처럼 굴 필요 없어요. 긴 여정에는 반드시 반전의 기회가 여러 차례 찾아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늦는다고 조급해하지 마세요. 대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찾고 차근차근 준비는 하고 있어야죠. 한 번뿐인 이 삶에서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차근차근 준비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때 달리면 됩니다.

8. 마지막으로, 재단의 장학생들과 젊은 연구자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느 한 가지 특별한 경험을 제안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거의 틀림없이 인생 100세 시대를 살게 될 것입니다. 미래학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우리는 직업을 적어도 대여섯 차례 옮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 세상에서 예전처럼 한 우물만 파는 전략은 더 이상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 젊을 때의 경험에 가성비를 따지지 마세요. '이게 나중에 돈이 될까?' 계산하기보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이것저것 신명 나게 해보세요. 그 다양한 경험의 조각들이 나중에 여러분 인생 100년을 버티게 할 든든한 자산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