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포스코청암재단 아시아펠로우 기고문 포스코신문 보도(1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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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밥 한 끼 먹자”와 한국문화

운드라 / 포스코청암재단 아시아펠로우(몽골)

“식사하셨어요?”

한국 사람들은 밥을 너무 좋아한다. 온종일 식사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는다.

 

‘금강산도 식후경’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찬밥에 국 적은 줄 모른다’ 등 밥과 관련된 속담도 참 많다.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들 머릿속은 밥 생각으로만 가득 찬 것처럼도 보인다. 도대체 왜 밥 이야기를 자주 할까? 인사할 때도 하는 ‘밥 이야기’는 처음 한국에 온 나에겐 편하지만은 않았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한국어 선생님은 수업 들으러 온 내게 인사도 하기 전에 “식사했어요,운드라 씨?” 하고 물었다.

 

난 “아직 안 먹었어요”라고 하니까 대답도 없이 그냥 가셨다. 식사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몽골에서는 식사했느냐고 물어보고 안 먹었다고 하면 같이 먹자는 뜻으로 물어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사부터 밥 이야기를 하는 한국 사고방식이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마음에 가깝게 느껴진다.

 

6·25전쟁 후 1953년 국민소득이 고작 57달러이던 한국은 배고파본 경험이 있는 민족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식사를 아주 중요시할 것이다. 식사를 했는지 물어봄으로써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인은 또 미안한 일이든 고마운 일이든 ‘맛있는 것 먹자’는 말을 자주 한다. 인사로 건네는 이 말 또한 한국 사람들은 식사 및 식사 자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식사를 같이함으로써 소중한 시간을 공유한다는 뜻에서 아주 의미있는 말인 것 같다.

 

“언제 밥 한 끼 먹자!”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일일 것이다. 길에서 아는 한국인을 만나 헤어질 때면 으레 ‘언제 밥 한 끼 먹자’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도대체 밥을 먹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 약속은 안 잡으면서… 한국인한테는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인사말일 때가 많다.

 

그래서 외국인인 내 관점에서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한국인한테는 자연스러운 인사일 수도 있지만 한국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한테는 거짓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내가 짝사랑하던 멋진 한국인 선배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선배랑 학교 앞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선배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조만간 밥 먹자”고 했다. 나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아, 이 선배도 혹시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김칫국부터 마신 것이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이후로도 일주일간 연락을 기다렸지만 선배는 밥 먹자고 연락을 하지 않았고, 다음에 봐도 밥 이야기는 건네지도 않았다.

 

한국인의 ‘조만간 밥 먹자’는 지금 얼굴 봐서 반갑다는 말이지, 꼭 당장 내일모레 만나서 밥을 먹자는 뜻은 아니었다.

 

“술 한 잔 하자!”

 

지금은 내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술 문화이지만 처음 한국에 온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러시아를 비롯해 중앙아시아 국가들 혹은 몽골에서 알코올 중독은 사회적인 심각한 문제로 인식된다. 이러한 알코올 중독을 문제시하는 사회에서 자란 나에게 한국의 술 문화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느 날 한국에 처음 와서 사귄 한국인 친구하고 대화 중이었다.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어 친해지는 단계였고 난 그 친구에게 ‘평소 뭘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를 물었다.

 

‘음악을 듣거나 쇼핑하고 친구들 만난다’ 등 평범한 답을 기대했지만 그 친구는 “술 먹는 것을 즐긴다”며 아주 진정성 있게 답했다. 예상 밖이었다. 그 친구는 뒤이어 자신이 술을 아주 잘 마신다고 자랑까지 하면서 “다음에 술 한 잔 하자”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다소 황당하던 한국문화와 사고방식이었다. 한국생활에 익숙해진 지금은 나한테 평소 무엇을 하고 노느냐고 물어보면 나 역시 “술 먹고 논다”고 말한다. 보통 한국인이 ‘술 한 잔 하자’고 하는 말은 상대방과 친해지고 싶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제 술 좋아한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한국인한테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술 먹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보다 술자리를 통해서 교수님이나 동료들 혹은 선후배들과 친해질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기 때문에 한국의 술 문화가 좋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한국에서 유학하는 외국인 학생에게는 속뜻을 알 수 없는 한국말이 많이 있다.

 

한국말을 깊이 이해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일 것이다. 나아가, 편견으로 문화를 판단하지 않고 숨겨진 의미나 내면을 알아보려는 열린 마음이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자세임을 깨닫게 된다.

운드라 / 포스코청암재단 아시아펠로우(몽골)